마리아 대중대학


                                   2006/2007

                         교회의 사회교리에 대한 강의

                                   제 1학년


2007년 5월 19일, 토요일

제 5 강의

카타리나 물라테로(Caterina Mulatero)

교회의 사회 교리의 항구한 원리들과 근본가치들

                        


서론


오늘의 강의로써 우리는 교회의 간추린 사회교리(DSC)에 관한 올해의 1 학년 과정을 마무리하게 됩니다.  지금까지 일반적인 특성과 기초적 개념들을 소개했고, 그 다음으로 간추린 사회교리서 전체를 검토할 것입니다.

이번 강의에서는 교회의 사회교리의 항구한 원리들과 근본가치들로서,  간추린 사회교리의 첫 부분을 요약하는 내용인, 160번부터 208번을 살펴볼 것입니다.


A) 교회의 사회교리의 항구한 원리들


각각의 개별적인 원리들


간추린 사회교리에 부각되는 각각의 원리를 간단히 살펴본 후 우리 운동의 카리스마가 어떻게 이에 기여하고 있는지를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1)  인격주의 원리 (간추린 사회교리 105-108번)


인격주의의 원리는 다른 원리들 옆에 있는, 다른 원리들과 같은 원리가 아니고 교회의 사회교리의 기초이며 그 총체적 원리들의 토대가 됩니다. 이 원리 안에는 또한⟪사회교리의 다른 모든 원리와 내용의 기초가 있습니다⟫.


이 원리는 인간의 존엄성에 관해 현실적이며, 구체적이고 역사적으로 고려한 것입니다. 인간의 존엄성이 사회구조와 기관들에 비해 중심적인 자리를 차지한다는 것입니다. 사목헌장 기쁨과 희망 (25항)은 인간의 존엄성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 모든 사회제도의 근원도 주체도 목적도 인간이며 또 인간이 아니어서는 안 된다.⟫ 이 근본적이며 포기할 수 없는 인격주의원리는 교회의 사회교리 전반에 깔려있는 내용이며, 기술적-과학적 혹은 경제적 및 정치적 이해들이 지닌 상호연관성을 고려할 때마다 항상 이 인간의 존엄성을 염두에 두고 부각시켜야 합니다.


사목헌장은 인간이 사회구조와 기관들보다 우선해야 하며 사회적 특성을 지닌 모든 형태의 사업들보다 앞서야 한다고 분명히 밝히고 있습니다. 사실 인간은 우주 안에서 "유일한" 존재가 되게 하는 그의 드높은 존엄성으로 인해 그 자체로서 최고의 가치를 지니며 그 어떤 경우에도 결코 단순한 도구로 여겨지거나 대접할 수도 없습니다.


예를 들면, 현대 통신 매체를 사용하여 일하는 사람은 그가 사용하는 도구들보다 더 중요한 존재입니다. 이는 그 도구들이 아주 값비싸고 고도로 발달된 것이라 해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리고 인간을 이 도구들의 하나로 혹은 그 한 부분으로 여겨서는 안 되며, 또한 단순한 톱니와 같은 존재로서 필요할 때까지 활용될 수 있는 존재도 아니고 그 다음에는 옆으로 제쳐놓을 수 있는 존재도 아닙니다.


인간의 권리와 의무에 대한 주제는 모든 인간의 존엄성과 연관되어 있습니다.


이제 이 원리에 대해 우리의 카리스마가 어떻게 기여하고 있는지 살펴봅시다.


우리의 카리스마는 인간에 대해 나름대로 고유한 인류학적 시야를 제시합니다. 즉 각 사람의 참된 특성은 그가 예수, 곧 또 한 분의 그리스도라는 것입니다.


끼아라는 "로마의 부활’이라는 글에서 이렇게 설명합니다. ⟪예수님은 참된 인간이십니다. 그 누구보다도 더 깊은 인간성을 지니고 계십니다. 모든 인간(모든 그리스도인)은 사실상, 하느님의 아드님보다 더 하느님의 아들(=또 한 분의 예수님)입니다. 모든 인간은 또 한 분의 그리스도, 그분의 신비체의 지체입니다. 그리하여 모든 인간은 과학, 예술, 정치 등 모든 분야에서 저마다 독특한 역할을 담당합니다. (…) 인간은 그의 모든 인간적 측면과 능력에 있어 사장될 것이 아니고 들어 올려져야 합니다. (…) 새로운 인본주의를 열 필요가 있습니다. 여기서는 진정 인간이 중심입니다. 무엇보다 먼저 그리스도인 인간이 중심입니다. 즉 인간들 안에 살아계시는 그리스도가 중심입니다.》(1)


(1) Chiara Lubich, Risurrezione di Roma, in "Nuova Umanita’", 6(1995), p.8



2)  연대성의 원리(간추린 사회교리 192-196번)


연대성은 인간의 사회성과 평등성에 긴밀히 연관되어 있습니다. 연대성은 인간들 사이는 형제적 관계로 연관되어있음을 알려줍니다. 연대성은 모두가 유일한 인간 가정에 속해 있음을 말해주며, 각 개인들과 백성들 간의 관계가 이 근본적 평등성을 지니게 합니다.


연대성은 상호보완적인 두 측면을 지닙니다. 곧 도덕적 덕목사회적 원리입니다. 도덕적 덕목의 측면에서 볼 때 연대성은 《공동선을 추구하는 것》입니다. 즉 모든 이와 각자의 이익을 위해 투신하겠다는 강력하고도 항구적인 결의입니다. 우리 모두가 모두에게 책임이 있는 만큼, 만인의 선익과 각 개인의 선익에 투신함을 뜻합니다》(2). 사회적 원리의 측면에서는 연대성을 기관들의 조직의 원리로 이해해야 합니다. 즉 구조들과 기관들의 형성과 기능을 이끌고 정돈하는 주체로 보는 것입니다. 기관들과 구조들은 연대성을 기초로 정의와 사랑에 따라 설립되며 조직되어야 합니다. 예를 들면 연대성을 지속적으로, 그리고 용감하게 실행함으로써 죄의 구조(3)를 극복하고 연대성의 구조로 변화시켜야 합니다. 즉 사회생활 속에서 선익을 이끌어 나아가는 구조로 변화시켜야 하는 것입니다.

(2) 요한 바오로 2세, 회칙, 사회적 관심, 38항

(3) 사회적 관심(36번)에 의하면, 구조적 및 제도적 "죄의 구조"는 개인적 죄의 결과이며 악의 도구가 됩니다. 구조적 및 제도적 "죄의 구조"는 해악, 불의, 고통 등을 조장하며, 끝내는 이 도구를 자유롭게, 그리고 의식적으로 사용하려는 사람들에게 개인적 죄를 저지를 가능성을 제공하기 때문입니다.  "죄의 구조"의 한 예로는 마약의 생산과 유통을 위해 생겨나는 조직을 들 수 있습니다.


우리 카리스마는 이 원리에 대해 어떻게 기여할까요?


연대성은 서로간의 사랑의 표현입니다. 서로간의 사랑을 깊이 생활할 때 성삼위 각 위격 간의 사랑의 교류를 낳게 됩니다. 이 교류의 삶 속에서는 사랑이 순환되며 또한 영신적이며 물질적인 모든 선도 순환되게 합니다. 이 자산의 순환 속에서 연대성은 개인들 간에나 백성들 간에 구체성을 띄게 됩니다. 개인적인 관계에 있어서나 구조와 기관들 안에서나 마찬가지입니다. 이렇게 해서 교류의 구조가 탄생되고 성장합니다.



3)  공동선의 원리(간추린 사회교리 164-170)

이 개념을 이해하기 위해 우리는 여기서도 인간의 본질적인 사회적 측면에 주의를 기울여야 합니다. 이 측면 때문에, 각 사람은 자신의 삶을 다른 사람들에게로 향할 때에만, 다른 사람들과 함께, 다른 사람들을 위해, 다른 사람들 덕분에 살아갈 때에만, 충만히 실현될 수 있습니다. 그 결과 사회적 공동생활은 개인의 선만이 아니라 이 개인들이 속해 있는 공동체-정치적으로 조직된-의 선을 진정으로, 끊임없이 추구하게 됩니다. 한 마디로 사회적 공동생활은 공동선 을 추구하게 마련이라는 뜻입니다.


공동선 의 원리는 모든 정치적 공동체를 형성하는 목적과 연관이 있습니다(4) 오히려 공동선은 모든 정치적 공동체의 목적입니다. 즉 정치적 공동체는 개인, 가정, 여러 사회적 그룹들이 제각기 혼자서 달성할 수 없는 어떤 목적에 도달하기 위해 형성된다는 것입니다. 즉 정치적 공동체의 구성원들 각자와 공동체 전체의 충만한 성장을 가져오는 것, 이것이 정치적 공동체의 목적입니다. 모든 구성원들의 충만한 발전에 도달하는 것입니다.

(4) 정치적 공동체는 자연적인 사회가 조직될 때, 즉 개인 혹은 그룹이 혼자서는 도달할 수 없는 목적들을 달성하기 위해 기구들을 고안해 낼 때 탄생된다.


공동선은, 그러므로, 사회적 단체의 각 구성원의 특수한 선의 단순한 총합이 아니며, 국가가 계획한 바도 아닙니다. 그것은 "더 많은 것"을 뜻합니다. 사회가 이 목표를 위해 정치적 구조와 기관들을 만들어낼 수 있을 때 비로소 여기에 도달할 수 있게 됩니다. 오직 모두가 협력할 때 비로소 이 "더 많은 것"에 도달할 수 있으며, 다른 사람의 선을 마치 자신의 선으로 여기는 이해타산 없는 기여가 있을 때에 비로소 가능한 것입니다.


공동선의 추구는 정치적 공동체 이외에도 모든 형태의 단체생활에 관한 것이기도 합니다. 즉 가정에서 시작해서 협회들, 마을에서 시작해서 도시에 이르기까지, 백성들의 공동체로부터 국가에 이르기까지. 각각이 저마다의 수준에서 "자신의" 공동선에 도달하려 노력해야 합니다. 공동선은 결국 자신의 생존의 원인이 되는 요소이기 때문입니다.(간추린 사회교리 165항 참조).


공동선을 추구함은 권위와 법적 질서를 필요로 합니다. 시민과 그룹의 활동들은 법적 테두리 안에서 이루어질 때에 적법성과 정의로움이 보장됩니다.

공동선의 필요성은 사회적 조건들과 역사적 필요들과 연관되어 있으므로 결정적으로 법으로 정해지지 않았지만, 그러나 인간 총체적 증진 뿐 아니라 인간의 권리들을 존중하고 있음을 분명히 하고 있습니다.

공동선의 추구에 근본적으로, 그리고 지속적으로 존재하는 몇몇 요소들은  다음과 같은 것들입니다. 즉 평화와 민주정치를 위한 노력, 적법성의 문화 선호, 환경보호…입니다.


또한 인간가족 전체의 공동선에 항상 생생하게 열려 있어야 합니다. 즉 일치를 향해 걸어가고 있는 세계는 이와 같은 인식을 가져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 원리에 대해서도 우리의 카리스마가 어떻게 기여하고 있는지 봅시다.


사회에 대해, 정치적 공동체에 대해, 공동선에 대해 말할 때, 항상 우리는 눈앞에 일치된 세계를 내다보아야 합니다. 따라서 정치, 연대, 사랑, 그리고 교류를 위한 노력의 최종 목적은 일치된 세계를 건설하는 것입니다. 일치된 세계는 유토피아가 아니고 사람들, 백성들이 그들 사이에 형제애를 생활함으로써 이룬 새로운 관계의 결실입니다. 사람들과 백성들이 새로운 관계를 생활할 때 새로운 구조가 태어납니다. 이렇게 하려면 시간이 걸리겠지만 지역이나국가및 국제적 수준에서 이 같은 일이 이루어져야 할 것입니다.


 


4)  보조성의 원리 (간추린 사회교리 185-188번)


이 원리는 교회의 사회교리의 지속적인 지침들 중 하나입니다.

그렇다면 이 원리는 무엇을 뜻하는 것일까요?  보조성(Subsidiarity)이란 단어는 도움(help)을 뜻하는 보조금(Subsidy)에서 나온 말입니다. 교회의 사회교리에서는 도움(Subsidy)을 뜻하기 위해 사용되고 있습니다. 즉 상위 질서의 기관들, 즉 좀 더 크고, 좀 더 중요한 기관(예를 들면 국가)들이 하위 질서의 기관(예를 들면 노동조합)들에게 부여하는 후원을 뜻합니다.


이 원리에 기초하여 국가는 《가정, 단체, 연합체, 지역 단체들, 요컨대, 사람들이 사회에서 효과적으로 성장할 수 있게 하고 또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생명을 불어넣는 경제, 사회, 문화, 체육, 여가, 직업, 정치 단체들에 대한 관심을 보이지 않고서는 인간의 존엄성이 신장될 수 없다.》(간추린 사회교리서 185항)


생명력 있는 사회 구조를 가지기 위해서는 사회성의 이 모든 표현들을 옹호하고 증진시킬 필요가 있습니다. 이 같은 목적에서 보조성의 원리가 적용되었습니다. 보조성의 원리는 한 국가 안에서 작용하며 동시에 국가의 의무들을 한정하고 규명하는 여러 사회 그룹들의 능력과 기능들을 조절하고 조화롭게 합니다.


이 원리에 대해 우리 카리스마는 어떻게 기여할까요?


우리의 카리스마는 과업의 분산을 통해 "살아있는" 공동체를 형성하게 하며, 어린이, 젊은이, 어른 모두가 저마다 책임을 지게 합니다. 따라서 모든 구성원들이 비록 제각기 다른 기능과 과제를 지니지만 항상 형제애의 정신으로 이를 수행함으로써 유일한 몸의 살아 움직이는 부분이 되게 합니다. 공동체를 구성하는 모든 현실들 역시 저마다 충만히 자기 자신인 동시에 다른 모든 현실들과 일치되어 유일한 그림을 구성한다는 뜻입니다. 서로 상대편에게 자신을 내어주는 가운데 일치와 차이점이 동시에 존재하는 것입니다. 즉 일치는 다양성을 없애지 않습니다. 다양성은 일치에 금이 가게 하지 않으며, 사랑 안에서 일치를 강화합니다. 권위를 사랑으로 행사함으로써 이 역동적 삶을 실현하도록 돕습니다.


5)  참여의 원리(간추린 사회교리 189-191번)


보조성의 원리의 결과는 각자가 몸담고 있는 시민 공동체의 정치, 사회, 문화, 경제생활의 모든 측면에 대한 적극적 참여입니다. 참여는 인간 존엄성의 표현이며, 따라서 포기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것은 권리와 의무의 집합이며, 공동선을 내다보면서 책임감을 지니고 행사해야 합니다.

정치생활에의 참여는 민주주의 자체를 유지하는 보다 큰 보증일 뿐 아니라, 민주주의적 질서의 축들 가운데 하나입니다. 실지로 민주주의는 참여적인 것이 아니면 민주주의가 아닙니다. 여러 가지 차원에서 정치적 임무를 지고 있는 사람들은 참여가 한 국가 안에서 현실화 되게 하기 위해 지속적, 지능적, 창조적 작업을 이루어 나아가야 합니다.


참여의 원리에 대해 우리 카리스마가 기여하는 바는 다음과 같습니다.


우리의 카리스마는 우리 가운데 예수님을 모시고 살아갈 때만이 참여는 가장 충만하다고 가르칩니다. 따라서 모두가 저마다 자신을 충만히 내어주는 전적인 사랑을 필요로 합니다.  이 같은 맥락에서 참여란 각자가 살고 있는 공동체의 모든 특정 부분이 다 "자신에게 속한 것"이므로 그에 관심을 기울여야 함을 뜻합니다. 공동체 안에서 일어나는 모든 사건들을 위해 살고, 괴로워하고, 기도하는 것을 뜻합니다. 또한 자신이 수행하는 역할과 상관없이 꼭 같은 수준으로 모두에 의해 모든 일이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인식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6)  재화의 보편적 목적(간추린 사회교리 171-181항)

《하느님께서는 땅과 그 안에 있는 모든 것을 모든 사람과 모든 민족이 이용하도록 창조하셨다. 따라서 창조된 재화는 사랑을 동반하는 정의에 입각하여 공정하게 풍부히 나누어져야 한다.》(5)

(5) 현대 세계의 사목헌장 69번


이 말씀으로 제 2차 바티칸 공의회는 교회의 사회교리의 근본적인 개념, 즉 재화의 보편적 대상을 설명하고자 했습니다.  요한 바오로 2세는 아무도 예외 없이 창조의 놀라운 만찬에 초대되었음을 상기시키시면서(6), 《창조는 모든 이를 위한 것》이라고 끊임없이 강조하셨습니다.

(6) 요한 바오로 2세, Messaggio per la Quaresima(사순절 메시지) 1992, in "La Traccia" 2(1992) p.205


자연이 제공하는 재화들-땅, 자연 자원, 땅 밑과 바다의 재화들-이 우선 모든 인간에게 돌아가게 되어 있는 것이 사실이라면, 인간의 노동에 의해 생산된 재화들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사실 노동은 언제나 다른 사람들과 함께, 다른 사람을 위해 행하는 것이며, 따라서 인간 노동의 결실 역시 –모든 인간들 사이의 연대에 의한 덕목 때문에-노동하는 사람에게만 멈추어질 수 없는 것입니다. 노동을 한 사람은 자기 가족들과 함께 제일 첫 번째 재화의 수취인이 될 것입니다. 첫 번째이지만 유일한 수취인은 아닙니다.


재화의 보편적 수취인은 시간적으로도 확장됩니다. 연대의 의무는 이 시대의 인간들만을 서로 연결할 뿐 아니라 미래의 인간들과도 연결시킵니다. 즉 우리의 뒤를 이을 사람들, 인류 가족의 테두리를 확장시킬 사람들에 대해 무관심할 수 없습니다. 그 결과, 우리는 환경을 파괴할 수 없고 부를 낭비할 수 없으며, 미래의 세대에게 지고 갈 수 없는 짐을 남겨줄 수 없습니다.


재화의 보편적 대상은 자연적 권리입니다. 즉 인간의 본성 안에 새겨진 권리입니다. 그것은 인간의 그 어떤 개입이나 재화에 대한 제도에 앞서는 것이며 우선하는 것입니다. 


사유 재산권 은 교회가 자연권으로 인정하는 바이긴 하지만, 그러나 재화의 보편적 대상을 확실히 하기 위한 수단 중 하나로 보았습니다. 따라서 그것은 절대적이며 침해할 수 없는 권리로 보지는 않았습니다. 사유재산권은 수단이지 목적은 아닙니다.


간추린 사회교리는 《그리스도교 전통은 사유 재산권을 절대적이고 침해할 수 없는 것이라고 인정한 적이 없다》(177항)고 분명히 밝혔으며 항상 공동선의 필요성을 내다보면서 그 사회적 기능을 인정하도록 촉구했습니다.


이 원리에 대해 우리 카리스마는 어떻게 기여하고 있을까요?


재화의 보편적 목적은 우리 운동 안에서 초창기로부터 서로 간의 사랑과 일치의 표현으로서, 물질의 공유로써 구체적 실현을 보아왔습니다. 목적은 항상 가난한 사람이 없는 공동체를 이루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은 보편적 형제애를 구체화하고 가시화하려는 목적에서였습니다. 물질의 공유는 공유 경제를 통해서 경제 체제 안으로도 침투했습니다.

 




7) 가난한 이들을 위한 우선적 선택 (간추린 사회교리 182-183항)


간추린 사회교리는 명확하게 이에 대해 언급합니다. ⟪재화의 보편 목적의 원칙은 가난한 이들, 소외받는 이들, 어느 모로든 자신의 올바른 성장을 방해하는 생활 조건에서 살아가는 이들에게 특별한 관심을 쏟아야 한다. 이러한 목적을 위하여, 가난한 이들을 위한 우선적 선택을 다시 한 번 강력히 확언하여야 한다. 이것은 그리스도교 사랑의 실천에서 가장 중요한 특별한 형태의 선택을 말하는 것으로, 교회의 전통전체가 이를 증언한다. 이것은 그리스도인 각자가 그리스도의 삶을 모방하도록 영향을 끼치지만, 우리의 사회적 책임에도, 따라서 우리의 생활 방식에도 똑같이 적용되고, 재화의 소유와 사용에 관한 논리적 결정에도 적용된다. 그뿐만 아니라 오늘날에는 사회 문제가 전 세계적인 차원을 지닌다는 점에서, 가난한 이들에 대한 우선적인 사랑과 거기서 영감을 받아서 내리는 결정은 당연히 수많은 굶주리는 사람들과 곤궁한 사람들, 집 없는 사람들, 의료 혜택을 받지 못하는 사람들, 그리고 더 나은 미래에 대한 희망이 없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할 수밖에 없다⟫.


이 모든 것은 재화를 사용하는 데에 있어서 우리의 자세와, 소비자로서 우리들의 선택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모범을 따라 교회는 세기를 걸쳐 가장 보잘 것 없는 이들, 가난한 이들, 소외된 이들 안에서 주님의 모습을 알아보며 우선적으로 선택해 왔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이 이상의 카리스마의 증거를 보겠습니다.


이 운동의 초창기부터 가난한 이들에 대한 우선적인 사랑은 하나의 현실이었습니다. 이것은 끼아라의 삶과 트렌트 도시에서 살았던 초창기 친구들의 삶을 통해서 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경험은 계속되었고 새로운 지역으로 이 이상이 퍼져 나갈 때마다 반복되고 있습니다. 이와 같은 선택은  조직적이 되고  더욱 수많은 사회활동을 낳았으며 시간이 지남에 따라 사업회 안에서 발전하게 되었습니다.



의미와 일치 (간추린 사회교리 160-163항)


결론을 맺으며, 사랑의 문화를 건설하기 위하여 이러한 모든 원리들의 의미와 유래 그리고 중요성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교회의 가르침이 표현하는 바와 같이, 이러한 원리들은  단지 하나의 교회 문서에서 조직적으로 완성된 것이 아니라 오랜 기간에 걸쳐 점차적으로 교회의 사회교리의 역사적인 변화에 따라 그 본질을 선별한 것입니다. 이는 교회가 시대의 요구와 역사의 변화에 따라 부응하고자 이룬 노력의 결실입니다.


교회의 사회적인 가르침의 핵심요점인 이 원리들은 시간상 영속적이고 의미상 보편적이므로 교회는 이 원리들을 ⟪사회현상을 해석하고 평가하는 데에 기본적이고 으뜸가는 준거인 매개 변수로 제시합니다⟫(간추린 사회교리 161항).


이 원리들은 사회현실 전체와 관련된 것이므로 대인 관계에서부터 가정 관계에 이르기까지, 경제조직에서부터 정치를 매체로 하는 관계에 이르기까지, 국제적인 관계에서부터 환경문제에 이르기까지 관련되어 있습니다.


교회의 사회교리 원리들은 각기 특수성을 지니고 있으나 개개의 원리는 전체구조의 일부로서 상호작용하고 상호보완하며 강하게 상호 연계되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이 원리들이 지닌 윤리적인 의미를 보고자 합니다. 이 원리들은 ⟪사회생활의 궁극적이고 구조적인 토대⟫와 관련되어 있습니다.

이 탁월한 사회원리들에 내재된 윤리적 요구는 개인들의 사적 행위들과 관련되고, 또한 동시에 ⟪오랫동안 수많은 사람들의 선택에 영향을 미쳐왔고 그 선택을 좌우할 수 있는 법률, 관습과 규범, 사회규약으로 대표되는 제도⟫들과 관련됩니다. (간추린 사회교리 163항)


B) 사회생활의 근본가치


교회의 사회교리는 불변하는 원리들뿐 아니라 근본적인 가치들도 제시하며 이 요소들은 인간다운 사회를 건설하고 사랑의 문화를 이루게 합니다.


원리들과 가치들 사이의 관계는 두말할 나위 없이 상호적입니다.  가치들이 근본적인 측면을 바라본다면, 원리들은 실천적인 측면에 해당됩니다. 두 가지 모두 중요하니, 하나가 발전할수록 다른 하나가 앞으로 나아가는데 도움을 주고 유지시켜 주기 때문입니다.


교회의 사회교리가 제시하는 가치들은 근본적으로 진리, 자유, 정의, 사랑입니다. 이러한 가치들은 인간의 존엄성 안에 내재되어 있으므로 이를 발전시키고 충만히 실천에 옮겨야 합니다.


이 네 가지 가치들을 교황 요한 23세께서는 회칙 지상의 평화 (1963)에서, 사회생활을 위하여, 특히 평화를 건설하고자하는 정치공동체들 사이의 관계에 필수적인 준거가 되도록 제시하십니다. 또한 이 가치들은  하느님께서 정하시고 인간의 본성 안에 새겨놓으신 질서들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고 하십니다.


지상의 평화: 《사회생활에서 인간들의 질서를 지키는 일은 윤리적 성격에 속한다. 사실 이 질서는 진리에 바탕을 두며, 정의 에 의해 실행되며, 타인을 위한 사랑으로 힘을 얻고 완전해지며, 자유 안에서 항상 새로워지고 더욱 바람직한 균형을 갖게 된다.(제37항)


1) 진리 (간추린 사회교리 제198항)

존엄성을 지닌 모든 사람은 언제나 진리를 추구하며 진리 안에서 질서 있게 살아가야 합니다. 진리를 추구하고 진리 안에서 살아가는 이 두 가지는 인간의 존엄성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진리 안에서 살아가는 것은 무엇보다도 사회관계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납니다. 실제로, 한 공동체 안에서 살아가는 인간의 공존은 진리를 바탕으로 하고 있습니다. 교황 요한 23세는 회칙 지상의 평화에서  실제로, 한 공동체 안에서 살아가는 인간의 공존은 진리를 바탕으로 할 때 비로소 질서를 잡고 풍요로워지며 인간 존엄성에 부합하게 된다고 하십니다. (16쪽 참조) 사회 혹은 정치공동체 안에 복합적인 문제들이 있을 때 진리를 더 사랑하고, 진리에 따라 해결하려고 노력할수록 우리는 분쟁에서 멀어지고 사회적인 공존과 공동선을 더욱 추구하며 건설하게 될 것입니다.  실상, 진리는 현대사회에서 자주 일어나듯이 인간들 사이를 차별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결속시키는 중요한 요소입니다. 그러므로 진리나 도덕이 다수에 의해 혹은 시대양식에 따라가는 것이 아님은 매우 분명합니다.


구체적으로 본다면 진리 안에서 살아가기 위해서는 사회생활 안에서도 지속적이고 깊이 있는 양성이 필요합니다. 지혜롭고 두드러지는 형태로 존재와 선택, 행동에 대하여 최고의 판단력을 제공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은 또한, 자신들이 교육을 받아야 할 뿐 아니라 스스로가 교육자가 되도록 노력하여야 합니다. 예수님의 모범(요한복음 18,37)에 따라 진리를 증거하여야 하며 현대가 요구하는 모든 교육도구들을 사용할 수 있어야 합니다.


2) 자유 (간추린 사회교리 199-200항)


자유는 각 인간사회가 인간이 자라나도록 실현시키는 “환경”이며 “방법”입니다. 자유는 “하느님의 모습을 닮은 탁월한 표징”이므로 모든 인간이 지닌 최상의 존엄성의 표징입니다. 모든 사람은 자유롭고 책임 있는 존재로 인정받을 권리를 지니고 있으며 동시에 다른 이들의 권리도 존중할 의무를 지닙니다.

각자가 개인의 소명을 완수하고, 자신의 종교적, 문화적, 정치적 견해를 표현하고, 자기의  생활신분을  선택하고, 자신의 직업을 스스로 결정하며, 경제적, 사회적, 정치적 주도권을 추구할 수 있는 것이 자유가 지닌 가치입니다. 이러한 자유의 가치는 인간 각자와 공동체 의 기본으로서, 나 자신뿐 아니라 다른 사람 안에서도 존중되어져야 하며 공동선과 공공질서가 정한 한계 안에서 모든 경우에 책임 있는 태도로 이루어져야 합니다.


또한 자유는 어떠한 형태로 표현되든, 도덕적으로 그릇된 것은 거부할 수 있고 개인이나 가족 또는 사회의 성장을 저해할 수 있는 모든 것은 멀리할 수 있는 능력으로 표현되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에게 있어서 자유란 두가지면을 지니고 있으니 하나는 그리스도의 측면에서 하느님의 선물이며 다른 하나는 인간의 측면에서 이 선물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을 말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자유에 대하여 귀중한 지침을 주십니다. 복음을 통하여 진정한 자유인의 모델을 제시하십니다. 자신의 일생과 가르침을 통하여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당신과 같은 새로운 사람, 자유로운 사람이 되는 길을 제시하십니다.


예수님은 모든 면에서 자유인이셨습니다.


-법률 면에서: “안식일이 사람을 위하여 생긴 것이지, 사람이 안식일을 위하여 생긴 것이 아니다.” (마르코 2,27)


-인간의 죄 앞에서: “당신들 중에 누구든지 죄 없는 사람이 있으면 먼저 저 여자를 돌로 치시오” (요한 8,7)


-사회적 금기 앞에서: “바로 그때에 제자들이 돌아와 예수님께서 여자와 이야기하시는 것을 보고 놀랐다.”  (요한 4,27)


-권력 있는 자들: “불행하여라, 너희 위선자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아!”  (마태오 23,27)


-제자들에게: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열두 제자에게, “너희도 떠나고 싶으냐?” 하고 물으셨다. (요한 6,67)


-대중 앞에서: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셨다. “너희가 나를 찾는 것은 표징을 보았기 때문이 아니라 빵을 배불리 먹었기 때문이다.” (요한 6,26)


-재물 앞에서:  “ 사람의 아들은 머리를 기댈 곳조차 없다.” (루카 9,58)


예수님은 자유인이셨으므로 우리를 모든 노예생활에서 벗어나게 하시고 성삼위 사이에 끊임없이 감도는 자유롭고 가득한 사랑이 감도는 하느님의 왕국, 가득한 자유의 왕국에 들어갈 수 있게 하셨습니다.


3) 정의 (간추린 사회교리 201-203항)


정의는 인간의 권리와 의무가 공동체 안에서 존중되도록 하고 인간의 존엄성이 존중되도록 구체적으로 실현시키는 한 방법입니다. 정의는 그에 상응하는 도덕에 관련된 가치입니다.


그리스도교 뿐 아니라 고대시대부터 정의는 무엇인지 답을 찾고 있습니다. 철학자이며 알렉산더대왕의 스승인 아리스토텔레스에 의하면 정의는 가득한 덕으로 표현되며 모든 덕을 포함하고 있다고 합니다. <정의를 지닌 자는 자신에게만이 아니라 다른 이를 위해서도 사용합니다.>


구약에서 보면 “정의”란 단어는 자주 인용되고 있습니다. 마르티니추기경님은 이렇게 표현합니다.

<정의는 백성들의 생활에, 공동체의 생활에 기본적으로 존재하는 덕입니다. 이 덕은 긍정적이고 건설적이며 인간들 사이의 관계 그리고 하느님과 인간사이의 관계에 존재하는 자선의 법률을 촉진시키는 덕입니다. 정의라는 뜻의 “옳은”것은 “선한”것, “거룩한”것, “완전한”것을 말합니다.>


신약에서 보면 정의는 올바른 관계를 유지하는 것에만 쓰이는 덕이 아니라 존엄성을 키워가는 가치이며 정의와 사랑은 분리시킬 수 없습니다.


토마스 아퀴나스성인의 흔적을 따라서 <가톨릭교회 교리서> 1807항에 보면 정의란<마땅히 하느님께 드릴 것을 드리고 이웃에게 주어야 할 것을 주려는 지속적이고 확고한 의지이다>라고 단언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정의는 “상대방”을 향하는 것이며 상대방을 한 인격체로 인정하려는 의지에 바탕을 두고 상대방에게 주어야 할 것을 주는 행위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정의는 “상대방”과 연관 지어진 것으로 이루어진다고 토마스 성인은 말합니다. 그러므로 정의는 인간의 외적인 행동을 규정짓고 이웃과 다른 사람들을 향하여 나아가게 합니다. 여기에 정의의 탁월한 사회적인 가치가 존재합니다.


정의를 규정짓는 것에는 또 다른 요소가 있으니 “상대방에게 주어야 할 것”을 주는 것입니다. “상대방에게 주어야 할 것”을 주는 것은 무엇을 뜻하는가요? 그 내용은 무엇인가요? “상대방에게 주어야 할 것”은 내가 규정짓는 것이 아닙니다. 그 내용은 주관적인 것이 아니라 한 인격체의 심오한 정체성을 정의하는 것입니다.


오늘날 전 세계적 차원의 사회 문제와 관련하여 요청되는 사회정의는 사회, 정치, 경제적 측면들, 그리고 무엇보다도 불의의 구조적 차원과 그 해결책과 관계됩니다. 개인이나 사회 공동체적으로, 정치단체에서 경제조직까지, 지역차원에서부터 국가나 세계차원까지 그 해결책을 찾아볼 수 있을 것입니다. 공동선과 권위를 나타내는 것과의 연대관계는 분명한 것이며 양도될 수 없습니다.


정의는 사회를 구성하는데 있어서 매우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지만 사랑이라는 더욱 깊은 힘에 의해 완성됩니다. 사회는 인간성이 가득할 때 자라나고 꽃을 피우므로 정의뿐 아니라 사랑도 필요로 합니다.


교황 베네딕트 16세 께서는 회칙 하느님은 사랑이십니다 에서 권리와 의무가 상호적임을 인식하며 사랑 안에 침투하는 것이 진정한 정의라고 하십니다. 이지노 조르다니의 진지한 표현으로 결론을 맺고자 합니다. <정의는 사회를 구성하고, 사랑은 사회를 양육합니다. 하나는 두뇌이고 다른 하나는 가슴입니다. 하나는 구조이고 다른 하나는 혈액입니다. 하나는 인간적이고 다른 하나는 하느님의 것입니다.>




4) 사랑 (간추린 사회교리 204-208항)


사랑, 애덕이 그리스도교의 본질이라면 교회의 사회교리도 그러합니다. 사랑의 길은 교회의 사회교리 전반을 따르고 있으며 교리는 사회 윤리 전체의 가장 높고 보편적인 기준인 사랑을 소개합니다. 교회의 사회교리는 성바오로의 말씀을 인용하며 <더욱 새로운 형태의 현대의 사회문제들에 대처하고자 추구하고 선택하는 모든 길 가운데에서 가장 “위대한 길” (1코린 12,13 참조)은 사랑의 길이다>라고 확언합니다.



교황 요한 23세의 가르침 중에서, 공동체적으로 사회에서 살아가기 위하여 제시한 네 가지의 기둥 중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랑이라고 하신 것은 매우 의미심장한 말씀입니다. 나머지 세 가지인 진리, 정의, 자유라는 가치는 사랑의 내부로부터 흘러나와서 태어나고 발전합니다.


인간의 모든 측면을 포함하는 이와 같은 사랑은 사회적으로 성실하고 일관성 있는 의무를 지도록 요구하며 하느님과 형제들을 향한 책임 있는 생활로부터 형성됩니다.


이와 같은 진실한 사랑은 사회적인 의무가 되며 사회적이고 정치적인 사랑을 표현하게 됩니다. 즉 이웃에게, 이웃들에게 전해지는 사랑이며 개인적으로 뿐만이 아닌 단체나 기관을 통하여 전해집니다. 그러므로 사랑은 개인이 할 수 있는 가능성을 넘어 점점 더 깊고 넓게 확장되며 세계적인 차원에까지 도달하게 됩니다.


교황 바오로 6세께서는 회칙 80주년 (1971)에서 정치 분야에 대해 <정치 기술은 그리스도인이 다른 사람에게 봉사해야 한다는 의무를 실천하는 한 가지 필연적 방법이다>라고 말씀하시고 또한 경제 분야에 대해서도  <형제적 사랑이 꽃피어 하느님의 섭리를 표현할 수 있게 될 것이다>라고 말씀하십니다. 그 뿐만 아닙니다. 정치계나 경제계 외에도 법조계, 대중매체, 교육계, 예술계 등 다방면의 사회분야에서도 모두가 이웃에 봉사하는 그리스도인의 의무를 살아야 합니다. 교황 요한 23세께서 말씀하신 바와 같이 이 모든 분야에 사랑이 스며들어 생명을 불어 넣어 줄 필요가 있습니다.


결론


우리는 “사랑의 길”을 되돌아보며 교황 베네딕트 16세의 회칙 하느님은 사랑이십니다 를 다시 한 번 상기하고자 합니다. 예수회 신부님이신 바르톨로메오 소르지는 교황님께서 이 회칙을 통해 이와 같이 말씀하셨음을 확인합니다. <사회교리가 강요함이 없이 제시하고 있고, 정치적인 의도 없이, 정당과 이념에 관계없이 자유롭게 사회적인 애덕을 실행하며 , 심지어 정당의 지지자나 숨겨진 목표 없이  항상 행동으로 또한 기도로 “봉사”하는 새로워진 교회 상을 봅니다>. 이것이 사랑이신 하느님의 가정교회(Church family)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