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한 청년이 자기 애인에게 '사랑의 증거'를 보여 달라고 요구하는 것이 잘못이라고 말하는 가톨릭 교회의 윤리관을
받아들일 수가 없습니다. 물론 두 남녀가 서로 깊이 사랑하고 있기 때문에 서로를 상대편에게 내어줄 필요를 느끼고
있는 경우를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두 사람이 혼인성사를 받은 다음에라야 육체적인 사랑의 관계를 가질 수 있다는
생각은 너무 좁은 견해가 아닐까요? 물론 이기적인 목적에서 '사랑의 증거'를 요구하는 젊은이들도 있다는 것은
인정합니다. 그렇기는 해도 모든 경우에 혼전 성관계를 금지한다는 것은 지나치다고 생각합니다.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혼인 전의 성관계에 대해 옳다거나, 그르다거나 아무런 말씀도 하신 적이 없습니다. 한 차례 고해성사를 본다고 해서 혼전 성관계에서 오는 문제가 다 해결된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 어느 독자 드림 -
사랑을 확인하고 싶다는 이유에서 혼전 성관계를 요구하는 것에 대해서, 그리고 가톨릭 교회가 복음의 빛 안에서 이를 어떻게 평가하는 가에 대해서는 이미 이전에 언급한 바가 있습니다. 그것을 참고하시고, 여기서 저는 단지 독자께서 교회의 입장을 받아들이기가 어렵다고 한 대목에 대해서만 답을 하려고 합니다
이 문제는 우리 모두가 가지고 있는 어려움이라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올바로 신앙생활을 한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도 하늘나라로 들어가는 길은 '좁다'고 말씀하셨던 것입니다.(마태오 복음 7,13)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성생활에 있어서도 우리가 올바른 삶을 살도록 요구하십니다. 이 같은 예수님의 뜻을 이해하려면, 무엇보다도 먼저 성령께서 주시는 은총의 빛이 필요함을 지적하고 싶습니다. 왜냐하면 성령께서는 예수님께서 가르치는 사랑의 사고방식을 우리에게 알려주시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성령의 도우심을 받아 예수님께서 요구하시는 사랑의 사고방식을 가질 때에만, 신앙생활은 우리가 지고 갈 수 없는 어떤 멍에가 아니라 참된 자유의 체험이 될 수 있을 것이며, 주님의 뜻을 기쁘게 완성하기 위해 욕정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을 것입니다.
바오로 사도는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육체의 욕정을 채우려하지 말고 성령께서 이끄시는대로 살아가십시오." (갈라디아서5,16)
또한 예수님께서는 시대의 흐름을 거슬러 올라가라고 우리에게 요구하십니다. 그런데 어떻게 하면 이 목표에 도달할 수 있을까요?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실천하며, 기도를 하고 성사의 은총을 받으면 가능합니다.
또한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것에 있어 성숙해지려면, 인간 본능의 욕구들에 대해서 극기하고 그 욕구들에 대해서 대항하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동시에 예수님께서는 참으로 인간적이십니다. 간음한 여인이나 사마리아 여인을 대하실 때처럼 예수님께서는 엄격하고 냉혹한 심판관이 아니라, 오히려 그분이 가져오신 새로운 생활에 대한 매력과 기쁨과 그분의 자비로운 사랑을 통해, 우리의 연약함을 이겨내기를 바라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하루아침에 완덕이 이르기를 원하시지는 않으실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성실하고 관대한 자세로 완덕에 이르도록 힘써 노력하는 것입니다. 어떤 이는 실패를 거쳐 완덕에 도달하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그것이 실수였음을 인정하고 다시 시작하는 것입니다.
다시 시작한다는 것은 무(無)에서 재출발하는 것이 아니라, 신앙생활이라는 하나의 건물에 새로운 벽돌을 쌓는 것임을 기억하면서 다시 일어나는 것입니다. 여기에 고해성사에 관한 이야기를 첨가할 수 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 성사는 우리로 하여금 보다 큰 용기를 가지고 다시 시작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성사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고해성사를 통해서 하느님께서 사랑이심을 굳게 믿고 다시 시작하는 것만이 중요합니다.
그런데 '완덕으로 나아가도록 다시 시작하라.'는 예수님의 요구 앞에서, 우리는 스스로 연약하고 끈기가 없다고 느낄 수도 있을 것입니다. 또한 예수님의 이 요구가 어떤 이에게는 매우 어렵게 느껴질 수도 있을 것이고, 실제로 특별히 어려운 상황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복음에 혼전 성관계에 관한 내용이 없다고 해서 혼전 성관계를 정당화 할 수는 없습니다. 이는 교회에게 다른 윤리관을 제시해주실 것을 요청할 수 없다는 뜻입니다. ■ - 2000년 10월호 -